[합본] 화잠 (전2권/완결)
굉장히 오래전에 사놓고 이제서야 읽었는데...왜 안 읽었었나...의아해하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모든면에서 뛰어난 남주가 여주만을 생각하는 일편단심이 멋졌고....모든것에서 마음을 닫았던 여주가 조금씩 남주애게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이 잘 그려진것 같아서 좋았습니다.역시 김경미 작가님에 대한 기대를 져버리지 않은 작품이라 생각되었습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
1. 책 소개
※ 본 도서는 ‘화잠’ 1, 2권 합본입니다.
날 떼어내려 하지 마시오. 달아나지도 마시오. 내게서 숨으려 들면, 어디도 가지 못하도록 내 곁에 붙잡아 가둬둔 채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게 할 테니.
속세와의 인연을 끊고 선인의 길을 선택한 유하. 하지만 명나라의 공주 영령의 병이 깊어지자 황궁은 충열대장군 유검우를 통해 유하에게 거역할 수 없는 명을 내리는데…….
대장군. 황태자 전하께서 급히 장군을 뵙자 하십니다.
급히?
네. 최대한 빨리, 그러나 다른 이들에게는 별다른 의심을 사지 않도록 들어오라 하셨습니다.
어두운 황실의 분위기를 아는 검우는 백옥처럼 매끄러운 이마를 슬쩍 찌푸렸다. 어인 부름이신가.
공주 마마의 병환은 아직 아무런 차도가 없으시던가?
그러하시다 들었습니다, 대장군.
장 내관이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들은 대로 전한다. 그것이 황궁에서 일하는 내관과 여관들의 입이다. 자칫 잘못 올린 말이 화禍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을 잘 아는 그들만의 살아남기 위한 처신인 것이다.
큰일이군.
2. 작가 소개
김경미
2002년 그린 핑거 로 데뷔했다. 같은 해 카사블랑카 를 시작으로 야래향 , 노란 우산 , 청애 , 눈노을 , 위험한 휴가 , 매의 검 , 화잠 , 어긋난 휴가 , 웨딩돌 하우스 를 냈다.
3. 미리 보기
높다란 전각 사이로 푸른 깃발이 힘차게 펄럭인다. 중中, 전前, 후後, 좌左, 우右의 오군 중 좌를 뜻하는 푸른 깃발이 금색 수실로 수놓인 채 자기가 꽂힌 그곳이 병권의 핵심 세력인 줄 아는 듯 기세 좋게 휘날리고 있었다. 그 아래로 좌군도독부左軍都督部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
좌군도독부의 여러 전각 중 정중앙에 자리한 삼층 전각. 자리에 앉아 언제나처럼 군무를 보고 있는 자는 좌군도독부의 주인인 충열대장군忠烈大將軍 유검우劉劍友였다. 얼핏 문관文官처럼 보이는 그는 좌군도독부의 대장군이라는 무거운 직책을 맡기에는 너무 젊었다. 아직 이립而立도 되지 않은 스물일곱의 그가 어령군御令軍, 금군禁軍, 오군을 포함한 삼군 중 오군의 핵심이랄 수 있는 좌군도독이 된 것은 명明의 군사軍史 이래 한 번도 없던 초유의 특진이었다. 어린 나이에 대과에 장원급제해 문관으로 창창한 앞날을 보장받은 그가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나간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눈을 까뒤집을 만큼 놀랐건만, 느닷없이 그와는 어울리지도 않는 황제가 친견하는 무과武科에 나가 다시 장원을 땄을 때는 모두들 할 말을 잃었다. 그때 그의 나이 스물하나. 그 자리에서 문무를 겸양한 인재를 얻었다 하며 호탕하게 웃던 황제에게 금군상장군의 직위를 받은 그는 국경에서 벌인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워 군의 최고 직위인 오군의 좌군도독이자 충열대장군에 올랐다. 그러나 빛이 강하면 그늘도 큰 법. 많은 이들이 그의 빠른 출세를 질투하고 시샘했지만, 그의 쟁쟁한 능력과 대대로 공신과 대관을 배출해낸 명문 중의 명문인 형주유가荊州劉家의 배경, 황제와 황태자의 크나큰 신임에 쓴 침만 삼킨 채 모난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부장 연대호然大護는 자신보다 열 살은 어린 대장군을 흠모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좌군만이 아니다. 같은 오군은 물론이요, 대장군이 한때나마 몸담은 금군과 어령군에서조차 그는 존경받는 최고의 장군이었다. 오죽하면 금군의 몇몇 무장이 다시 대장군 돌아오길 애타게 기다리며 황제께 애원 섞인 주청을 올리고 있다지 않는가. 그 생각에 연대호는 숯 같은 굵은 눈썹을 찡그렸다. 대장군이 금군에 가신다면 자신들이 있는 좌군은 어찌 된단 말인가. 안 될 말이지. 대장군께서는 이곳에 계셔야 하고말고. 연대호는 능력도 없는 금군에 절대로 대장군을 뺏겨서는 안 된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대장군, 궁에서 사람이 나왔습니다.
매끄러운 검처럼 희고 수려한 얼굴이 스윽 종이 위로 나타났다. 굵지는 않지만 달걀 형태의 얼굴에 곧은 코와 붉은 입술은 자칫 여인의 것처럼 보이지만, 눈길을 돌려 그 위를 보면 다들 의심을 지울 수밖에 없으리라. 태산처럼 묵직한 검은 눈동자는 굳건한 의지로 다져진 사내의 눈이었다. 호사가들이 북조北朝 시절 너무나 아름다운 얼굴 탓에 전장에 나설 때면 가면을 썼다는 난릉왕蘭陵王의 재림이라고 쑥덕거릴 정도로 유검우는 빼어난 미인美人이었다.
황태자궁에서 장 내관이 나왔습니다.
검우는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옆으로 치웠다.
안으로.
네, 대장군.
잠시 밖으로 나간 연대호는 관을 쓴 어린 내관과 함께 들어왔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대장군.
그렇군. 오랜만이네, 장 내관. 그런데 이 좌군까지 어인 발걸음인가?
장 내관은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제가 올 일이라고는 하나뿐이지 않겠습니까, 대장군. 황태자 전하께서 급히 장군을 뵙자 하십니다.
급히?
네. 최대한 빨리, 그러나 다른 이들에게는 별다른 의심을 사지 않도록 들어오라 하셨습니다.
어두운 황실의 분위기를 아는 검우는 백옥처럼 매끄러운 이마를 슬쩍 찌푸렸다. 어인 부름이신가.
공주 마마의 병환은 아직 아무런 차도가 없으시던가?
그러하시다 들었습니다, 대장군.
장 내관이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들은 대로 전한다. 그것이 황궁에서 일하는 내관과 여관들의 입이다. 자칫 잘못 올린 말이 화禍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을 잘 아는 그들만의 살아남기 위한 처신인 것이다.
큰일이군.
검우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돌아가는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지 않은가. 물론 병들어 자리에 누운 공주의 일도 큰일이라면 큰일이지만, 그가 걱정하는 것은 공주의 병환이 아니었다. 아마 황태자의 부름도 그 일과 무관하지 않을 터. 그렇지 않아도 한번은 만나 뵙고 상의를 해야 된다 여기고 있던 참이었다. 귀찮지만, 모르는 척할 수는 없는 일. 차가운 눈에 지루한 빛이 지나갔다.
알겠네. 전하께 군무가 끝나는 대로 궁으로 들어가겠노라 말씀드려주시게. 다른 이의 눈길을 끌지 않으려면 평상시와 똑같이 하는 것이 제일 좋은 법이니.
알겠습니다, 대장군. 그리 말씀 올립지요.
장 내관이 종종걸음으로 물러가자, 검우는 옆으로 밀쳐둔 종이를 앞으로 끌어내다 말았다. 본다 한들 눈에 들어올 것 같지도 않았다. 어차피 지금 당장 봐야 할 업무도 아니었다.
심기가 불편하십니까, 대장군?
연대호는 조심스러운 어조로 상관의 얼굴을 살폈다. 그러나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인색한 상관은 서늘한 얼굴로 다른 질문을 막아버렸다. 군영에 쓸데없는 소리가 돌아서는 안 된다. 황실과 조정의 일에 군부가 휘말려 힘을 낭비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어령군 총사인 헌원대장군과 금군 총사인 진대장군도 같은 생각이었다. 일전에 드물게 한자리에 모여 나눈 얘기 또한 그 일에 대한 것. 동요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것으로 삼군의 의견이 모였다.
예정한 시간보다 조금 일찍 군영을 나선 검우는 북경의 통천대로를 따라 말을 몰았다. 몇 해 전의 국경 침략 후로는 큰 전란이나 반란이 없는 탓에 백성들의 얼굴이 밝았다. 큰 재해도 없어 평년작 이상의 풍년이라 농부들의 흥겨운 노랫소리가 마을 밖으로 흘러나왔다. 상업도 활발해 시장에는 물건들이 가득했고, 흥정하는 장사꾼들의 입놀림과 손놀림은 연신 쉼 없이 움직였다. 한 만두 가게에서 무럭무럭 올라오는 뿌연 훈김이 커다란 만두처럼 보여 한층 먹음직스러웠다.
적색의 높다란 벽을 두른 자금성紫禁城 오문午門에 이른 검우는 등자에서 발을 떼고 말에서 내렸다. 여기서부터는 걸어 들어가야 한다. 문을 지키고 있던 병사가 황급히 대장군의 말고삐를 잡았다. 오문을 넘어서니 궁을 휘돌아 나오는 물 위로 놓인 다섯 개의 금수교金水橋가 보였다. 그 뒤로 하늘을 가린 거대한 전각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화려한 기둥과 추녀마루에 악귀를 쫓는다는 용, 봉황, 사자, 천마, 해마, 산예 등의 잡상雜像이 하늘을 향해 앉아 있었다. 궁을 지키는 금군위사禁軍衛士들이 창을 치켜들며 단단한 청석을 밟는 대장군에게 군례軍禮를 올렸다. 돌계단을 올라가는 그의 발걸음에 흔들린 갑옷의 미늘이 서로 부딪쳐 짤랑짤랑 소리를 냈다. 황태자궁인 덕화궁德華宮에 이르자, 군영에 다녀간 장 내관이 쪼르르 달려 나와 맞았다.
어서 오십시오, 대장군. 어서, 어서 드시지요. 전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들어오겠다고 알린 시각보다 일찍 나선 참인데도 전하께서는 기다리고 계신단다. 그만큼 다급한 마음이라는 뜻이렷다. 오면서 보니 회랑을 오가는 대신들의 표정 또한 자금성 위에 드리운 먹구름처럼 어둡고 칙칙했다.
덕화궁의 전각 안으로 들어선 검우는 용을 수놓은 푸른 용포에 뒷짐을 진 채 등을 보이고 있는 사내를 향해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전하, 신臣 유검우 부르심 받자와 대령했나이다.
등을 보인 황태자 주율朱律이 뒤로 맞잡고 있던 손을 풀었다.
가까이 오라.
피곤한 기색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한 걸음 떨어진 곳에 선 검우는 황태자의 얼굴을 보았다. 며칠간 제대로 눈도 붙이지 못한 듯 핏발 선 눈이 보였다.
곤해 보이십니다, 전하.
아, 며칠 영령 공주英玲公主 곁에서 밤을 새웠더니 좀 피곤하군.
주율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나마 자신은 바깥일을 본다는 핑계로 나올 수 있으니 나은 편이었다. 황태자비는 잠시 눈을 붙일 때를 제하고는 연일 공주의 처소에서 머물고 있었다. 비단 황태자비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황궁에 있는 황실 사람이라면 모두 영화궁榮華宮에 집결하다시피 한 형편이었다. 모후母后는 물론이요, 부황父皇마저 온종일 붙어 있으니, 두 분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공주의 처소에 파리처럼 달라붙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장 내관에게 공주 마마의 병환이 차도 없으시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그래. 그 때문에 걱정이 크네, 청송.
청송靑松은 검우의 호였다.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처럼 고고한 성정 변하지 말라는 의미로 검우의 부친인 유 대학사大學士가 직접 지어준 것이었다. 어린 시절 두 사람은 검우의 부친인 유광정劉光政에게 학문을 배워 사이가 가까웠다. 유문儒門의 큰어른이라 할 수 있는 유광정은 대나무처럼 꼿꼿한 성품이라 황태자라 할지라도 봐주는 법이 없었으니, 그야말로 호랑이보다 더한 엄사嚴師였다. 덕분에 지금도 주율은 스승인 유 대학사 앞에 나설 때는 한 번 더 몸가짐을 확인했고, 할 말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밖으로 내놓을 정도로 조심했다.
주율의 얼굴이 흐렸다. 노랑나비처럼 나풀거리며 황실에 웃음을 선사하던 하나뿐인 여동생의 일이다. 어의御醫들도 병명조차 알아내지 못하고 있으니 답답한 속은 새까맣게 타버린 지 오래였다. 그러나 막역지우랄 수 있는 검우는 알고 있었다. 황태자의 얼굴이 어두운 이유가 여동생인 영령 공주 주소예朱昭譽의 병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아바마마께서는 오늘도 조회朝會에 나가지 않으셨다네. 현재 정사는 중단된 상태지. 그나마 육부六部의 상서尙書들이 급한 일은 처리하고 있다지만, 슬슬 그것도 무리가 올 것이야. 하루에 올라오는 상소만 해도 얼마이던가? 그런데 부황께서는 영화궁에서 꼼짝도 하지 않으시니.
본시 팔불출로 유명한 황제 폐하였다. 황후를 지극히 아끼시어 내궁을 가득 채운 궁녀와 후궁들을 돌 보듯 하시었다. 그에 황제의 혈육도 황후께서 낳은 두 명의 황자와 한 명의 황녀뿐이지 않은가. 특히나 황후 폐하를 그대로 빼닮은 황녀에 대한 사랑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줄 정도였으니. 항시 피바람이 난무하던 황궁의 가족이 드물게 화목하여 다행이라며 안도하던 것이 황녀인 영령 공주가 병으로 누워버린 지금 역효과를 불러온 것이다. 애달픈 부모 마음에 국정 마비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으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다면 어처구니없는 일일 것이다. 주율은 머리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답답한 심사를 토로했다.
지나침이 모자란 것보다 더 못하다더니, 지금이 딱 그 모양새로세. 가끔씩 부황의 지나친 애정이 무섭다 여겨질 때가 있더니, 그예 이런 어이없는 문제를 일으키시는군.
한탄처럼 나오는 투덜거림에 검우도 붉은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주지육림酒池肉林에 빠져 정사를 내팽개친 황제야 수없이 많다지만……. 검우는 황태자가 처한 난처한 입장을 알 수 있었다. 정사를 돌보지 않는 황제를 대신해 황태자가 일을 처리할 수도 있으나, 그것은 황제의 윤허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자칫 말이라도 잘못 나왔다간 보위를 노린다는 터무니없는 오해를 살 수도 있는 일. 황제에게 장성한 황태자는 자식이면서 자신의 권력을 위협하는 적이기도 했다. 비록 그런 마음이 없다 하더라도 쓸데없는 빌미를 제공해 가뜩이나 답답한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다. 지금 황태자인 주율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곁에서 영령은 자신들이 돌볼 테니 옥체를 보전하시어 정사를 보시라 간언하는 것뿐이었다. 물론 황제는 황태자의 간곡한 청이 들리지 않는 듯 영화궁에서 어의들을 다그치고만 있을 뿐이지만.
며칠이라면 괜찮지. 그러나 벌써 두 달이 넘어가고 있질 않은가!
어의들은 뭐라 하더이까?
넓은 소맷자락을 휘날리며 너른 실내가 좁은 듯이 왔다 갔다 하던 주율이 주먹 쥔 오른손으로 왼손 손바닥을 거칠게 내리쳤다.
원인을 알 수 없다며 고개만 내젓고 있으니, 어찌 그런 자들을 어의랍시고 자리에 앉혀두었는지!
주율이 몸을 휙 돌려 검우를 쏘아봤다.
그리해 다른 의원을 찾으라 명을 내렸네. 이미 부황께서 중원에 있는 신의들을 모두 찾아오라 명을 내리긴 하셨지만, 나 또한 따로 사람들을 풀어 알아보았지.
소득이 있으셨는지요?
주율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성수신의聖手神醫가 오고 있는 중이라네.
검우는 황태자의 음성에서 석연치 않은 감정을 읽었다. 단순히 그 일 때문에 자신을 부른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검우는 되묻지 않은 채 가만히 기다렸다.
그런데 한 달쯤 전에 다른 의원 한 명을 소개받았다네. 성수신의도 고치지 못한 독을 해독했다더군. 뛰어난 의원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일이다 싶어 의원이 있다는 곳으로 사람을 보냈는데, 머저리 같은 자들이 모두 허탕을 쳤어.
의원이 전하의 명을 따르지 않았단 말씀입니까, 전하?
그랬다면 금의위錦衣衛를 보내 당장 잡아오라고 했겠지. 그 바보 같은 것들이 의원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그냥 돌아온 게야.
얘기인즉 의원이 살고 있다는 산을 찾았지만, 산속을 뱅뱅 헤매기만 하다 결국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산 아래 마을 사람들에게 물으니 틀림없이 산에 살고 있다 하는데, 찾을 길이 없었다. 마을 사람들도 막상 찾으러 나서면 찾을 수 없어, 그저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올 때만 기다려 의원을 청한다고 했다. 혹시나 싶어 오고 있다는 성수신의에게 그 의원에 대해 은근슬쩍 물어보니, 반색을 하며 청할 수만 있다면 당연히 청해야 한다는 말까지 들은 참이었다.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선도仙道를 닦는 그인지라, 세상에서 얼굴 보기가 힘겨운 이로세. 볼 수만 있다면 천길만길인들 달려가지 않겠는가마는, 그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절대로 문을 열어주지 않는 성품이니, 첫째도 공경이요, 둘째도 공경이라. 청하는 자의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일세.
성수신의의 그 말에 무슨 일이 있어도 데려와야겠다 마음먹은 주율이었다. 그러나 벌써 여러 명이 찾아갔으나, 얼굴은 고사하고 사는 집조차 보지 못했으니. 그리해 찾은 이가 오랜 친우인 검우였다. 지금이야 갑옷에 검을 차고 있는 무관이지만, 그 학문의 깊음이야 세상이 모두 아는 일. 그라면 산중에서 뱅뱅 맴도는 원인을 알아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 혹여 있을지 모르는 불측한 사태도 잘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검우는 황태자의 의중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그 얼굴에서, 지루한 설명에서 읽을 수 있었다. 슬쩍 미간에 빗금이 그려졌다. 자신이 누구던가. 좌군을 책임지는 대장군이었다. 원한다 하여 사사로이 비울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기어이 황태자의 명이 떨어졌다.
청송, 그러니 자네가 좀 가주게나. 가서 그 의원을 데려오게.
오죽 답답하면 황태자까지 나서서 의원을 구하려 들겠는가. 황상께서 제자리만 지키고 계신들 황태자의 어깨가 조금은 가벼울 터인데.
낙양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네.
한왕부漢王府 말씀이십니까?
검우는 문젯거리를 바로 집어냈다. 한왕. 낙양에 있는 황제의 숙부. 황태자의 작은할아버지인 한왕 주고후朱高煦는 야심을 숨기고 있는 늙은 호랑이였다. 영락제永樂帝를 도와 반정을 이루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으나 그는 형인 홍희제洪熙帝에게 밀려 낙양으로 물러나야 했다. 그 아드님인 현재의 황상께서 보위에 오르실 때부터 주의하신 것이 낙양에 있는 한왕부의 동태였다. 조부인 영락제와 같은 반란을 한왕이 일으키지 말라는 법이 없으니 말이다. 특히나 현 황실에서 단 두 명뿐인 황태자와 황자가 없어진다면 직계 혈손은 사라지고 가장 가까이 남는 자는 다름 아닌 한왕부의 혈족이었다. 그리해 동창東廠의 당두堂頭들이 다른 곳보다 더 많이 나가 있는 곳이기도 했다. 평소라면 빈틈을 보이지 않지만, 영령 공주의 병환으로 궁 안이 어수선할 때였다. 정사 또한 육부에서 처결하고 있으니, 미처 살펴보지 못한 어수룩한 틈새가 벌어지고 있을 수도 있었다.
주율은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양단간에 결론이 나야 하네. 영령을 고칠 수 있느냐, 아니면 포기해야 하느냐. 차라리 포기해야 한다면 빨리 포기하는 것이 나아. 그래야 다음을 생각하고 대비할 수 있을 터이니. 이대로 시간을 끌면 수십 년 갈고닦은 늙은 호랑이의 발톱에 채일 수도 있음이야.
검우도 속으로 수긍했다. 언제까지 공주의 병환에 매달려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고칠 수 있다면 고쳐야 할 일이나, 어찌할 수 없다면 빨리 받아들이는 것이 낫다. 황태자 역시 하나뿐인 여동생을 귀여워했으나, 모두 정신을 빼놓고 있으니 그만이라도 정신을 차려야 하지 않겠는가.
사람의 마음을 읽은 듯 점점 을씨년스러워지는 하늘에서 기어이 때 이른 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초설初雪이라, 회색빛 하늘에서 토해내는 흰 눈송이가 천천히 허공으로 나렸다. 순진한 아이들은 양팔을 벌려 눈을 반겼으나, 답답한 사람들의 마음에는 그저 무거운 짐인 양 다가올 뿐이니. 시월 초하루가 되던 날의 일이었다.
서序
하늘이 내린 아들天子의 시름이 천하를 뒤덮는구나
선인仙人은 세상과 연을 끊은 자라
번잡한 세상 인연에 휘말려들다
인연이 겹쳐 그물을 만드는구나
우중雨中에 마음이 흔들리다
과거는 혼자만의 기억이 아니다
아비와 딸이 만나나, 눈먼 아비는 딸을 모르네
지워진 존재가 떠오르나 사방을 둘러보아도 찾을 수가 없다
원령이 흐느끼나 돌아보는 것은 기억치 못하는 이뿐이구나
몸과 마음이 엮이다
두 번째 서序
하늘이 무정하여 숨겨주지 않는구나
어긋난 천륜은 돌이킬 수 없도다
수면 위로 떠오른 조각들
뜻밖의 손님이 찾아와 문을 두드리다
어둠이 몰려와 황급히 몸을 숨기다
별리別離에 마음을 깨닫다
한왕이 군사를 일으키다
그리움은 다함없어
그리움이 맞닿다
전황의 변화, 마음의 변화
낙양성에 불길이 치솟다
또 다른 봄
2017 에듀윌 7 9급 공무원 5개년 기출 국어
2017 에듀윌 7 9급 공무원 5개년 기출 국어 2016 최신기출문제를 시행처별로 국가직/지방직/서울시, 급수별로 7·9급을 구분하여 수록되어있어서 제가 풀고 싶은 문제를 선택하여 집중적으로 공부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 교재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수험생들에게 부담을 줄여주고, 무엇보다 해설이 상당히 자세해서 기출을 독학하는 경우 상당히 좋습니다. 예를 들어 기출 대부분의 문제집이 틀린 문제를 고르는 문제의 경우 그 해설이 왜 틀린지만 나와있고 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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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별쌤 최태성의 한눈에 사로잡는 한국사 세트
내용이나 구성면에서 정말 대단합니다.값어치 하는 책이네요.배송이 조금 느려서 걱정했는데 책을 펼쳐보니 근심걱정이 싹 사라졌습니다. 한국사 흐름이 잘 파악이 안되었는데 이 책을 읽고 흐름이 잡히네요.공무원 준비를 하고 있는데 진도가 안나가서 고민이었는데 이 책이 해결해주었어요!! 가독성도 좋고 책도 아담해서 디자인도 괜찮네요. 한국사 자격증이나 공무원 준비하시는분들에게도 아주 도움이 될꺼같아요.EBS 명강사 최태성의 가슴 뜨거운 역사 수업120만 수험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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