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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과 세계시민


이른 새벽에 잠이 깬 어느 날, 인간사랑출판사에 쪽지를 보낸 적이 있다. 그 즈음 신간으로 나온 <지구촌과 세계시민>이 있었는데, 그 책표지에 관한 개인적인 의견을 보냈다. 재미있는 사진이 몇 장 담긴 책표지의 이미지와는 달리, 시선을 확 잡는 부제가 없어서 안타까움이 있었는데, 이른 새벽 잠이 깬 기념으로 그 내용을 쪽지로 보낸 것이다. 평소 인간사랑출판사에서 내는 책에 관심이 많았던지라, 책에 관한 개인적인 생각을 쪽지로 세 개 보냈다. 쪽지를 확인한 인간사랑출판사에서 좋은 의견 고맙다며 답을 보냈고, 그 후의 쪽지에서는 책을 보내주고 싶다고 했다. 새벽에 보낸 세 개의 쪽지로 인해 인간사랑출판사에서 좋은 책 세 권을 받았고, <지구촌과 세계시민>은 그 중의 한 권이다. 독자와 소통하는 출판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쪽지를 보낸 다음 날, 인간사랑출판사에서 ‘책 제목 달기’ 이벤트를 실시하는 것을 보고 다시 한 번 놀랐다. 독자와 소통하는 멋진 출판사이다. 인간사랑출판사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 <지구촌과 세계시민>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진행된 한국연구재단 토대기초 연구지원 사업인 <한국 대학교육에서 ‘시민교육’ 연구 및 자료 총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출판하게 된 것이라 한다. ‘1장 환경위기와 생태, 2장 지원갈등과 지속가능성, 3장 빈곤과 질병, 4장 글로벌 경제와 불평등, 5장 주권과 국가이성, 6장 전쟁과 평화, 7장 다문화시대의 공존, 8장 종교와 포용의 문명, 9장 글로벌 사이버 세계의 위험’으로 글이 전개된다. 알고 싶으나 시간을 내어 찾아 읽어보기는 힘든 내용들이 가득 담겨 있다. 책 한 권에 이 많은 내용들을 담고 있는 것이 참으로 대단하고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휴가철이나 긴 연휴 때에 사색의 시간을 가지면서 마음 편하게 읽어보길 권한다. 개인적으로 3장에서 5장을 재미있게 읽었다. 내용이 워낙 방대하기에 간략히 정리한 <서문>과 함께, 재미있게 읽은 3장에서 5장을 중심으로 정리해 본다. 5장에서는 용어 설명이 많아 다소 지루할 수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서문> 지구화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은 국경의 경계를 넘어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이미 서로 얽혀 있으며, 정보화 시대의 도래로 인해 우리는 세계 곳곳의 일들을 실시간으로 접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모두 세계시민이다. 내가 사는 지역사회뿐만 아니라 지구 전체가 하나의 공동운명체이며 그것을 단위로 생각할 수 있는 정신의 확장성이 필요하다. 빈곤과 질병, 환경과 자원, 전쟁과 평화 등과 같은 문제는 인류 공통의 관심사이며, 연대와 협력을 요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런 정신의 확장과 공감, 연대와 협력을 통해 우리는 세계시민이 된다. <3장> 빈곤과 질병 세계화가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경제적 격차에 따른 부의 양극화 문제는 심각하다. 유엔개발계획의 1992년 판 『인간개발 보고서』에 따르면, 상층부의 소득 20%에 속한 사람들의 소득 합계는 하층부 20%에 속한 소득 합계의 60배에 이른다. 이 격차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지속적으로 심화되고 있다. 지구적 양극화와 빈곤의 심화는 지구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개별 국민국가 내부에서도 동일한 구조로 나타나고 있다. 경영자와 노동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임금격차는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현격하게 벌어지고 있다. 동시에 고용되지 않은 혹은 고용을 단념한 니트(NEET)나 단기 파트타임 노동에 종사하는 저임금의 프리터(Freeter)족 역시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니트족이나 프리터족의 출현은 크게 보면 세계경제의 저성장 국면에 따른 고용시장의 악화와 비정규직 고용구조가 고착화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특히 청년층에게서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이와 유사한 측면에서 우리가 검토해야 하는 것은 고령화 사회의 진전이 초래하는 문제이다. 생산가능 인구는 축소되고 연금생활자인 고령자가 증가한다는 것은 이들의 건강하고 문화적인 삶을 가능케 하려면 결국 정부가 투입해야 될 재정이 증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후의 삶을 가족경제 안에서 지탱할 수 있는 조건이 악화되면 악화될수록, 노인들에 대한 지원은 의료 및 사회복지 제도를 매개로 한 공공서비스로 전환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가처분 소득이 존재하지 않는 이 노년세대들을 지원할 수 있는 재정확보를 과연 현재의 정부가 충분하게 감당할 수 있는 재정상황에 있느냐 하는 점이다. 정부에 의한 의료 및 사회복지 예산이 확대되지 않는다면, 자산소득과 금융소득이 부재하는 은퇴 후 노인들의 질병과 고통, 빈곤의 심화는 피할 수 없는 일이 된다. 실제로 한국과 일본에서 노인 빈곤이나 고독사의 문제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추세여서, 이미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나 빈곤의 증대는 시민적 연대와 협력의 근거인 정의 개념을 위기에 빠뜨림으로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고 심화시키는데, 이러한 상황이 완화되거나 극복되지 않는다면 공동체의 안정을 위협하는 요소로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 양극화가 초래하는 경제적 빈곤과 질병 등의 사회적 고통을 해결하는 힘은 결국 사회적 연대로부터 가능해지며, 이것은 일국적 차원을 넘은 지구적 협력체계를 필요로 한다. 우리가 세계시민이 된다는 것은 이러한 분배상의 정의를 도덕적 혹은 윤리적 보편주의의 관점에서, 타자를 어떻게 대우할 것인가의 문제로 연결된다. 타자를 나와 같은 존재로 대우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가능케 하는 윤리도 윤리겠지만, 정치, 경제, 문화, 법과 같은 사회시스템을 세계시민사회라는 관점에서 변형시키려는 새로운 사유와 실천이 필요하다. <4장> 글로벌 경제와 불평등 글로벌 경제란 무역, 투자, 금융, 노동, 기술, 정보 등의 경제활동이 국민국가의 경계를 벗어나 지리적으로 확대되는 ‘경제활동의 초국경화’를 이루는 가운데, 세계경제의 상호의존성과 통합 수준이 심화되어 가는 현상을 의미한다. 그런 중에 생산, 유통, 소비 등의 모든 영역에서 세계 경제가 지구적 차원에서 통합된 질서가 바로 글로벌 경제이다. 이전과 달리 국가의 논리가 아니라 이윤 실현을 확대하려는 자본의 논리로부터 추동되어 왔으며, 지식정보화가 그 인프라를 제공하고 있는 가운데 개인, 기업, 지역, 국가의 행위 모두가 국경을 넘어 이루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경제로의 전환은 산업적 성격보다 금융적 성격을 더 강하게 띠는 초국적 자본주의가 주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작금의 글로벌 경제는 산업생산에 대한 투자보다 자본 시장에 대한 투기를 통해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초국적 자본은 과학기술과 정보 통신의 혁신에 따른 전 세계적 연결망을 토대로 24시간 실시간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전 세계 금융거래는 무역거래의 50배에 이르고 있다. 글로벌 경제로의 전환 이후 국가 간에는 물론 국가 내부에 불평등이 심화되고, 전 세계 차원에서 경제위기가 주기적으로 반복되면서 만성화되었다. 세계은행은 국가 간 불평등이 확대되고 있다면서 가장 부유한 20개 국가의 평균 소득은 가난한 국가의 평균 소득의 37배가 되고, 이러한 비율은 40년 전과 비교하여 2배에 달하는 것으로, 이의 주요한 원인으로는 가장 가난한 국가들에서의 성장의 결핍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글로벌 경제가 직면한 주요 문제는 빈곤과 불평등의 심화, 경제위기의 주기적 반복, 만성화이다. 빈곤과 불평등이 심각해진 상황에서는 복지국가의 기능을 더욱 강조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글로벌 경제는 언제든지 보호주의 정책으로 회귀할 가능성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제 하에서 국가의 빈곤과 불평등을 완화하고 해소하기 위해서도 복지 기능을 복원 혹은 강화해야 하지만,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도 그리해야 한다. 시기와 국가와 사회지출 규모 등에 따라 차이를 보이기는 하지만, 복지국가일수록 경제성장이 더 빠르다는 것을 감안할 때 그러하다. 뉴질랜드처럼 교육 분야에서는 복지를 확대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상황을 극복해가야 한다. 특히 소득수준에 비해 빈약한 복지제도를 갖고 있는 한국과 같은 국가의 경우가 그러하다. 글로벌 경제의 폐해, 즉 국가 간 불평등의 심화와 자본의 유동성과 불안정성에 따른 경제 위기의 반복이라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거버넌스 체제를 (재)구축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거버넌스는 ‘협치’를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글로벌 거버넌스란 국가 간 불평등과 자본의 유동성과 불안정성을 제어하기 위한 ‘협치 체제’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의 (재)구축이 필요한 이유는 자본의 유동성과 불안정성 같은 문제는 개별국가가 독자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누가 이러한 글로벌 거버넌스를 구축하느냐는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주목할 것이 바로 세계시민이다. 세계시민은 세계를 하나의 공동체로 인정하는 주체이다. 그린피스와 같은 국제 환경 단체에 가입해 국가를 초월해 세계환경을 위해 애쓰는 사람, 이주 노동자를 위해 출신국의 시민단체와 연대하여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을 예로 들 수 있다. 즉 국적을 초월해 정치적 실천을 하고 동료시민으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면 세계시민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글로벌 경제와 관련해서는 빈곤과 불평등의 심화와 같은 병리적 현상을 인식하고 초국가적 협력을 통해 앞서 제기한 글로벌 거버넌스의 과제를 수행하는 이가 바로 세계시민이라 할 수 있다. 지역화된 세계시민주의를 보다 체계화한 것이 세계시민적 공화주의로 이어지고 있기도 하다. 다중적 정체성을 지닌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이해에 기반을 두어 개인-가족-지역-세계인이라는 처지를 고르게 감안해, 지배-피지배의 관계가 아닌 공존의 주체로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공동체를 꾸려가는 ‘비지배의 원리’에 입각해 세계시민의 정체성을 구성해야 한다. <5장> 주권과 국가이성 ‘근대 국제질서는 유럽의 마지막 종교전쟁으로 평가되는 30년 전쟁(1618`1648)을 약 5년 동안의 지난한 협상 끝에 종결시킨 베스트팔렌 평화조약을 기점으로 출현했다.’ ― 1948년 레오 그로스가 처음 제시한 이 시각은 이후 국제정치학 교과서에서 근대 국제질서의 출발을 소개할 때 거의 예외 없이 채택하는 표준적인 설명이 되었다. 헨리 키신저는 주권, 국가이성, 국가이익, 세력 균형 등의 개념을 제도적으로 구현한 베스트팔렌 평화조약을 근대 국제정치의 지평을 개창한 ‘천재적’ 발상으로 평가하기까지 했다. 클라우제비츠에 따르면, 모든 전쟁은 극한 상태로 확전되는 속성을 지닌다. 클라우제비츠는 이런 확전 과정을 거쳐 도달한 전쟁의 극한 상태를 ‘절대전쟁(absolute war)’으로 개념화했다. 하지만 절대전쟁은 추상의 지평에서 논리적 추론을 통해 설정한 것일 뿐, 실제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에서 발생하는 ‘실제전쟁(real war)’은 현실의 다양한 변수 때문에 절대전쟁과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클라우제비츠는 모든 실제전쟁의 가변적 외양 이면에서 존재하는 세 가지 핵심 요소를 간파했는데, 전쟁시 동물적 적대감에 휩싸이는 국민, 불확실한 전쟁터에서 활동하는 군인, 정치적 이성을 발휘해서 전쟁을 지휘해야 하는 정치지도자가 각각 그것이다. 클라우제비츠는 이 중에서 정치 지도자의 역할을 가장 중요하게 평가했다. 전쟁 그 자체는 목표가 될 수 없고 항시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으로 ‘제한’되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치적 목적이 목표이고, 전쟁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이다. 이처럼 전쟁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으로 제한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정치 우위의 원칙’이라고 부른다. 정치 우위의 원칙을 통해서 아롱이 기대한 정치적 효과(확전을 통제할 수 있고, 적대적 감정이 폭발하여 무자비한 만행으로 끝없이 변질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 국가 간의 정치적 교섭의 목적을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생존, 공동의 번영, 그리고 인간의 목숨을 구제하는 쪽으로 설정할 경우에 한해서만 ‘신중하게’ 선택된 정치적 행위는 ‘합리적’ 행위가 될 수 있다.)를 거둘 수 있으려면 몇 가지 조건을 선결시켜야만 한다. 첫째, 정치지도자는 반드시 ‘책임윤리’를 실천해야 한다. 베버는 책임윤리와 신념윤리라는 두 개의 이념형을 구성해서 정치윤리를 설명했다. 베버에 따르면 정치는 여타 세계와 달리 ‘물리적 강제력(무력)’이란 수단을 법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독특한 성격을 지녔다. 정치의 폭력적 본성 때문에 정치의 독특한 윤리가 요청되는데, 책임윤리가 바로 그것이다. 책임윤리는 정치 지도자가 정치적 결정을 내릴 때 자신이 떠맡은 정치 공동체의 생존과 번영을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을 요구하는 윤리다. 반면, 신념윤리는 정치 지도자가 자신이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도덕적, 윤리적, 종교적, 추상적 가치에 대한 신념을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하면서 정치적 결정을 내리는 윤리다. 그래서 신념윤리는 사실상 ‘종교윤리’와 동일하다. 책임윤리를 실천하는 정치지도자는 정치 공동체의 생존과 번영에 대한 책임을 가장 중요시한다. 그러나 신념윤리를 실천하는 정치 지도자는 자신이 신봉하는 신념의 순수성에 헌신할 뿐, 자신의 행위가 정치 공동체에 초래할 결과에 대해서는 전혀 책임을 지지 않는다. 둘째, 정치 공동체는 그것의 관할 영역 내부의 무력을 모두 독점해야만 한다. 그래서 정치 지도자가 전시에 군 통수권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 공동체에서 무력을 독점하지 못할 때, 그래서 공동체 내부의 유력자들이 무력을 소유하고서 할거할 때, 그 공동체는 만성적 내전을 겪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내전 과정에서 그런 유력자들이 정치 공동체 외부의 세력과 결탁할 경우, 국제전으로 확전되는 것이 불가피하다. 셋째, 정치 지도자는 전쟁을 수행할 때 국민 다수의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지지는 정치 지도자가 국민으로부터 전쟁의 정당성을 획득할 때 비로소 확보할 수 있다. 그런데 정당성의 근거는 정치지도자의 ‘권력’이 아니라 국민의 ‘마음’에서 존재한다. 레이몽 아롱은 국제정치이론을 집대성한 『평화와 전쟁』에서 국제 정치적 평화의 조건을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제시했다. “국제정치적 법칙은 그 본성상 다음과 같은 원칙을 따라야 하다. 평화 시 모든 국가는 최선을 다해 우호적으로 지내야만 한다. 하지만 전쟁이 불가피하게 발생했을 경우, 적대국의 사활이 걸린 이익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전쟁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롱이 제시한 국제정치적 평화의 조건을 충족하는 전쟁을 수행할 수 있으려면, 반드시 앞에서 검토한 정치 우위의 원칙을 준수해야만 한다. 유럽에서 100년 이상 치열하게 전개되던 종교전쟁을 가까스로 종식시키면서 국제정치적 평화를 창출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른바 근대 유럽 특유의 지적 성취인 ‘주권’, ‘국가이성’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주권과 국가이성 등이 종교전쟁을 지배하는 신념윤리를 책임윤리로 전환시킨 일종의 ‘변환기’ 같은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유럽의 종교전쟁은 주권, 국가이성 등이 개입하면서 점차 종교적 색채를 탈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책임윤리가 안내하는 국제정치적 평화의 길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극적으로 제도화시킨 성과가 베스트팔렌 평화조약이었다. 보댕은 인간의 어떤 힘으로도 주권을 제약할 수 없으며, 따라서 주권은 “절대적” 능력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주권을 왕, 삼부회, 고등법원 사이에서 나눠가질 수 없다고 주장했다. 주권은 반드시 한 사람이나 하나의 정치제도가 정당하게 독점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보댕이 제시한 프랑스 정치적 병폐의 처방책은 유럽 여러 국가의 선망의 대상이자 모범이었던 프랑스 절대군주제에서 실현되었다. 한편, 국가이성은 보댕이 제시한 주권과 함께 근대 초기 국가이론의 양대 지주를 이루는 개념이었다. 국가이성은 보통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통해서 선구적으로 제시된 것으로 간주된다. 마이네케는 마키아벨리의 국가이성 사상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를 『로마사 논고』, 제3권, 제41장에서 찾았다. 절대적으로 자기 조국의 안전이 걸린 문제일 때, 정당한가 정당하지 않은가, 자비로운가, 잔혹한가, 칭찬을 받을 가치가 있는가 치욕스러운가는 전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없다. 그 대신 모든 양심의 가책을 제쳐놓고 인간은 모름지기 어떤 계획이든, 조국의 생존과 자유를 유지하는 계획을 최대한 따라야 한다. 세력균형을 통해서 국제정치적 평화를 성취할 수 있으려면 주권, 국가이성, 책임윤리, 정치우위의 원칙 등을 반드시 충족시켜야만 한다. 주권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내전과 국제전의 착종을 피할 수 없고, 국가이성, 책임윤리 등이 부재할 경우 적대국과 유연한 협상이 불가능해서 세력균형 체제를 경직시키거나 전복시키는 문제를 야기하며, 정치 우위의 원칙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제한전쟁, 전쟁종결 등의 과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전시나 평시에 타국을 ‘상대’로 간주할 수 있으려면 반드시 책임윤리를 실천해야 한다. 만일 신념윤리를 실천할 경우, 타국을 ‘원수’로 전락해 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전자에서는 세력균형 체제의 유연한 작동이 가능한 반면, 후자에서는 세력균형 체제의 경직 내지 전복이 불가피하다. 근대 유럽의 대외정책 정신은 대체로 전자에 가까우며, 특히 20세기 미국의 대외정책 정신은 대체로 후자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이른바 ‘윌슨주의’로 지칭되는 미국 특유의 국제정치관이 유럽 국제정치에 개입하게 되는데, 그 사건은 궁극적으로 베스트팔렌 평화체제를 전복시키고, 16세기 유럽 종교전쟁을 부활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리고 그렇게 틀 지워진 국제정치가 21세기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윌슨이 구상한 세계는 권력이 아니라 원칙에, 국가이익이 아니라 법률에 뿌리를 두었다. 유럽 강대국의 역사적 경험과 국제정치적 행동 양식을 완전히 전복시킨 것이다. 9?11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도했던 부시 독트린도 윌슨주의를 거의 그대로 계승한 것이었다. 부시 독트린의 신념윤리가 지배하는 테러와의 전쟁 또한 십자군 전쟁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테러와의 전쟁은 궁극적으로 16세기 유럽에서 전개된 종교전쟁과 동일한 성격을 지닌 것이었다. 최근 미국이 주도하는 테러와의 전쟁, 중동의 만성적 종교전쟁 등의 해법으로 베스트팔렌 평화조약 등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는데, 이는 경청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종교전쟁을 지배하는 신념윤리를 책임윤리로 전환시켜야만 종교전쟁의 갈등을 완화시키면서 정치적 해법을 모색할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이다. 현대 한국의 사회윤리는 대내윤리와 대외윤리를 준별하는 가산제의 유산과 정통과 이단을 준별하는 신유학의 신념윤리가 착종되면서 자리를 잡은 것이다. 한국의 사회 윤리는 한국사회를 지극히 독선적 사회로 만들어버렸다. 세대 간, 지역 간, 여야 간, 남북 간 등에서 극단적 적대감이 만성적으로 표출되고 있고, 그런 갈등은 끊임없이 클라우제비츠가 개념화한 ‘절대전쟁’으로 질주하는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에서 합리적 소통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했다. 남북 간의 커뮤니케이션 폐쇄를 해체하고, 남한과 북한의 평화적 공존 내지 통일의 길을 개척하려면 리슐리외가 걸어온 길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리슐리외는 ‘선악의 저편’에 존재하는 국가이성에 입각해서 책임윤리를 실천하는 가운데 프랑스의 패권과 유럽의 국제정치적 평화를 동시에 성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리슐리외는 그런 성취가 지속적인 외교적인 협상을 통해서 가능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국가는 간단없는 대외협상을 통해서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단 그 협상은 반드시 정치적 분별력에 입각해서 수행되어야만 한다.” 바로 여기에서 현대 한국 지성의 시대적, 실존적, 역사적 과제를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인의 영혼을 지배하는 신유학적 신념윤리를 해체하고, 한반도의 정치적 평화를 기약할 수 있는 책임윤리의 에토스를 새롭게 정착시키는 과제가 바로 그것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시점이어서 그런가 5장의 내용이 특히 가슴에 와 닿았다. 국가이성에 기초한 동맹으로 자리잡아야 할 ‘한미동맹’, 전쟁으로 치닫기 전에 풀어야 할 남북 간의 대화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오타가 적지 않게 보여서 아쉬움이 있다. 출간하기 전에 편집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맞춤법과 문단 구분에 조금 더 신경을 쓰면 좋을 듯하다. * 이 리뷰는 인간사랑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
세계시민에게 필요한 것은 연대와 공감이다. 혹자는 세계시민의 윤리나 양심을 강조하기도 한다. 즉 사회적인 강제성이나 통제가 없는 세계시민사회에서 우리는 설사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개인에서 출발하더라도, 이제는 내가 사는 지역사회뿐만 아니라 지구 전체가 하나의 공동운명체이며 그것을 단위로 생각할 수 있는 정신의 확장성이 필요한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지구촌의 다양한 일들을 우리 공동의 관심사로 느끼게 된다. 빈곤과 질병, 환경과 자원, 전쟁과 평화 등과 같은 문제는 서로 다른 지구인들에게 인류 공통의 관심사이며, 다른 지구인들과의 연대와 협력을 요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런 정신의 확장과 공감, 연대와 협력을 통해 우리는 세계시민이 된다.

이 책에서 다루는 지구촌과 세계시민 형성의 문제는 아래와 같다. 환경위기와 생태 / 자원갈등과 지속가능성 / 빈곤과 질병 / 글로벌 경제와 불평등 / 주권과 국가이성 / 전쟁과 평화 / 다문화시대의 공존 / 종교와 포용의 문명 / 글로벌 사이버 세계의 위험


서문 (이동수) 9

1장 환경위기와 생태 : 이동수 13
1. 환경위기와 자연에 대한 재성찰 13
2. 생태주의와 근대화의 결합 22
3. 환경, 경제 그리고 사회 30
4. 인간과 자연의 조화 37

2장 자원갈등과 지속가능성 : 이명원 51
1. 자원위기의 구조화 51
2. 자원위기의 현황과 쟁점 52
3. 식량자급과 에너지 전환의 가능성 64
4. 지속가능한 사회와 자원 71

3장 빈곤과 질병 : 이명원 75
1. 양극화와 사회적 고통 75
2. 빈곤문제의 현황과 쟁점 78
3. 질병문제의 현황과 쟁점 84
4. 빈곤·질병 퇴치와 세계시민사회 90

4장 글로벌 경제와 불평등 : 김윤철 99
1. 세계경제의 전개 99
2. 글로벌 경제로의 전환 108
3. 불평등과 경제위기 115
4. 글로벌 대안경제의 모색 126

5장 주권과 국가이성 : 이현휘 141
1. 국제정치적 평화의 조건 148
2. 유럽 종교전쟁 100여 년의 역사 156
3. 주권과 국가이성 165
4. 국가이성의 실천, 베스트팔렌 평화체제 그리고
윌슨주의의 국제정치적 퇴행성 185
5. 한국 정치(시민) 윤리의 마키아벨리적 전환 204

6장 전쟁과 평화 : 이현휘 227
1. 정치윤리의 두 유형 233
2. 클라우제비츠의 군사전략과 책임윤리 243
3. 미국의 전쟁 수행 방식과 신념윤리 251
4. 책임윤리와 국제정치적 평화 268

7장 다문화시대의 공존 : 장명학 293
1. 지구화와 인종갈등 293
2. 영국, 프랑스, 독일로의 이민 301
3. 제노포비아와 극우주의 309
4. 동화와 다문화의 이주민 통합정책 320
5. 다문화주의에서 상호문화주의로 331
8장 종교와 포용의 문명 : 이병택 345
1. 지구촌 문명과 하위문화들 345
2. 문명과 종교 351
3. 종교와 정치 357
4. 종교의 시민적 책임 367

9장 글로벌 사이버 세계의 위험 : 송경재 375
1. 지구적 네트워크 375
2. 지구적 네트워크 범죄 380
3. 글로벌 시민 협력 390
4. 사이버 위험의 해법 찾기 400

저자 소개 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