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에선 인간을 이기적인 존재로 본다. 여기서 이기적이라 함은 경제적 이익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과연 인간이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존재인가. 일제 시대에 민족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독립운동가나 군사 독재 시대에 민주화 운동에 발 벗고 나선 이들은 인간이 아니란 말인가. 이러한 사례만 보아도 인간을 움직이는 동기는 경제적 이익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경제적 이익보다 더욱 강력하고 원초적인 동기는 무엇인가. 고려대 심리학과 김학진 교수가 쓴 <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구조>에 따르면, 그것은 바로 인정 욕구 다. 인정 욕구란 말 그대로 타인으로부터 주목받고 관심을 얻고자 하는 본능적인 욕구를 일컫는다. 인정 욕구는 신생아 때부터 발달한다. 아기들은 엄마라는 대상을 향해 웃는 표정을 지으면 기본적인 욕구 - 따뜻함, 편안함, 안전함 등 -를 충족시킬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을 배우면서 인정 욕구를 발달시킨다. 이렇게 발달된 인정 욕구는 자라면서 육체적, 지적, 감성적, 예술적 차원으로 분화하면서 자신의 우수성을 드러내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받고자 하는 심리로 자리 잡는다.문제는 대부분의 욕구가 그렇듯이 인정 욕구 또한 끝이 없고,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커질수록 인정받지 못할 때의 좌절감 또한 커진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갑질 이다.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큰 사람들은 일상적인 인사나 매너, 서비스에도 무시당했다 는 느낌을 받기 쉽고, 이로 인한 분노를 막말이나 폭력 등으로 표출하기 쉽다. 타인에 대해 험담하는 것도 인정 욕구의 또 다른 표현이다. 흔히들 뒷담화는 작은 집단에서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행위라고 하지만, 실상은 자신의 우월함을 드러내고 가치를 확인받기 위함이다. 우리 때는 어땠는데 요즘 아이들은 어떻다 는 식의 꼰대 발언 또한 젊은 사람들 잘 되라고 하는 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주장)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나 잘났다. 인정 좀 해달라 는 표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아마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능력이나 인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얻는 일은 좋은 것인데 왜 멈춰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물론 뛰어난 능력과 인성은 그 자체로 장려되어야 하고 누구나 추구해야 할 중요한 가치임이 분명하다. 단, 이러한 가치를 추구하는 인정 욕구가 또 다른 어두운 얼굴로 드러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62쪽)그렇다면 타인을 인정하지도 말고 타인에게 인정받으려고 하지도 말라는 말인가. 물론 아니다. 저자는 문화권에 따라 사람들이 반응하는 보상 유형이 다르다는 것에 주목한다. 한국처럼 경쟁이 일상화된 문화권에서는 상대적인 만족감에 반응하는 사람이 많다. 이들은 내가 만 원을 벌었는데 남이 천 원을 벌면 기분이 좋지만, 내가 만 원을 벌었는데 남이 십만 원을 벌면 기분이 나쁘다. 재벌 총수라도 되지 않는 한 평생 기분이 나쁘다.(사진 출처 : http://www.enews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580640)반대로 경쟁이 일상화되지 않은 문화권에서는 절대적인 만족감에 반응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만 원을 벌면 그뿐. 그 돈으로 뭘 할지만 생각한다. 반드시 문화권에 따른 차이는 아닌지도 모른다. 작년 리우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중국의 수영 선수 푸위안후이는 자신의 최고 기록을 경신해 기쁘다고 말해 화제가 되었다. 만약 한국 선수가 동메달을 따고 나서 이런 태도로 인터뷰를 하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은메달을 따도 금메달 못 딴 죄인 취급 당하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좋은 반응이 안 나올 게 뻔하다.지나친 공감 능력은 집단의 리더들에게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스티브 잡스처럼 성공한 CEO 중에는 공감 능력이 낮은 사람이 많다는 주장이 있다. 놀랍게도 정치와 종교 분야의 지도자들 중에도 타인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사이코패스가 존재할 확률이 다른 분야에 비해 현저하게 높다고 한다. 심지어 이들을 일반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부류와 구분해서 일종의 성공한 사이코패스 라고 부르기도 한다. (186쪽)이 책에는 이타주의자의 인정 욕구 외에도 성공한 사이코패스,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의 뇌 차이, 중2병의 실체 등 다양한 주제의 글이 실려 있다. 이것도 저것도 관심 있는 주제라서 읽는 내내 즐거웠다. 각 주제에 관해 더욱 자세하게 분석한 책이 나왔으면 좋겠다.
2001년, 일본의 한 기차역에서 낯선 사람을 구하기 위해 기차에 몸을 던져 자신을 희생한 사람이 있다. 고(故) 이수현 씨다. 1초가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이수현 씨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는 과연 자신의 행동을 통해 얻게 될 사회적 평판이나 이타적 행위가 가진 뇌과학적 의미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있었을까? 이수현 씨의 이타적 행동은 우리의 상식처럼 그야말로 순수하게 타인을 위한 이타적 동기의 발로로 해석하는 것이 맞을지 모른다. 그런데 이런 추론도 가능할 수 있다. 그것은 혹시 사회적 평판을 추구하는 동기나 생존에 유리한 이타적 행동 전략 등이 오랜 경험을 거쳐 자동화 과정을 거친 것은 아닐까?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이자 사회신경과학자로서 이타적인 선택의 신경학적 기제를 연구해온 김학진은 첫 번째 저서 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구조 에서 이타적인 행위에 대한 흥미로운 관점을 소개한다. 흔히 선의에서 비롯된다고 여겼던 이타적인 행동을 뇌의 ‘생존 전략’과 연결 지어 설명하는 것이다. 김학진 교수는 이 책에서 사회 구성원들을 향한 이타적 행동은 개인의 생존 가치를 높여주는 중요한 전략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뇌과학을 통해 이타주의를 새롭게 해석하며, 인간의 도덕적 직관 능력이 가진 성장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한다.
프롤로그 뇌과학, 착한 사람의 본심을 말하다
1부. 칭찬에 중독된 뇌
1장. 우리는 왜 ‘좋아요’에 집착하는가
인정 욕구를 인정한다
우리는 왜 남의 눈치를 보고 선택하는가
선택의 가치를 계산하는 뇌
돈보다 평판이 더 중요한 사람의 심리
2장. 뇌는 어떻게 인정 중독에 빠지는가
뇌는 일차적 보상보다 이차적 보상에 끌린다
분노 조절 장애, 인정 중독의 또 다른 얼굴
1등이 모든 것을 갖는 사회가 부추기는 것
선량한 사람들이 비윤리적인 행위에 동조하는 이유
인정받고 싶은 욕망보다 더 강한 것이 있을까?
2부. 착한 사람은 우리를 어떻게 배신하는가
3장. 그 사람은 왜 착한 일을 할까?
인간의 이타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
이타적인 행동은 직관적이고 충동적이다
더 높은 보상을 얻기 위한 계산된 전략
영웅적인 희생 행동의 숨겨진 이면
타인이 나의 선택을 관찰할 때 고려하는 것들
살아남기 위해 학습된 이타주의 행동
4장. 공정성에 집착하는 인간의 속마음
너그러운 사람이 공공의 적이 되는 순간
이타적 처벌자의 심리 분석 135
손해를 보더라도 불공평한 제안은 거절한다
복수는 정말 나의 것인가
5장. 이타주의자의 이기적인 뇌
인간은 예측이 틀렸을 때 감정을 느낀다
불공정성을 판단하는 것은 이성인가 감정인가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얻는 방법
6장. 공감의 자기중심성에 대하여
공감은 살아남기 위한 뇌의 전략인가?
‘성공한 사이코패스’의 뇌 구조
공감 능력과 관점 이동 능력은 다르다
자신을 위한 선택인가, 타인을 위한 선택인가
타인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재능
공감하지 않으면 좋은 평판은 없다
3부. 뇌는 이타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7장. ‘합리적’ 이타주의자의 조건
인정 중독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합리적 이타주의자의 탄생
진보주의자가 도덕성에 더 민감한 이유
‘선의’에만 의존하는 것은 왜 위험한가
8장. 인간의 뇌는 살아남기 위해 변화한다
뇌는 가장 유리한 가치를 선택한다
네 심장 소리에 귀를 기울여봐.
가장 높은 생존 확률을 보장하는 선택
에필로그 새로운 의사결정 방식의 출발점
참고문헌
미주